[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 - 1편] 허니피셜, 산티아고 순례길의 장단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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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티아고 순례길은 예수의 열두 제자 중 하나였던 야고보 성인의 무덤이 있는 스페인 북서쪽 도시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Santiago de Compostela)로 향하는 약 800KM에 이르는 길이다. (야곱이라고 부르고 싶은 분들은 그렇게 부르시라, 난 야고보라고 부르겠으니) 싼띠아고(Santiago)는 야고보 성인을 칭하는 스페인식 이름이며, 영어식 표기로는 세인트 제임스(Saint James)가 된다. 1189년 교황 알렉산더 3세가 예루살렘, 로마와 함께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를 성스러운 도시로 선포한 이후로 수많은 순례객이 순례길을 걸었다. 1987년 파울로 코엘료의 책 <순례자>가 출간된 이후 더욱 유명해졌으며, 1993년에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지정되어 유럽은 물론 전 세계에서 순례객들이 몰려들고 있다. 그렇다면, 산티아고 순례길은 기독교를 믿는 사람들에게만 의미가 있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실제로 순례길을 걸어보면 종교가 없는 사람들 혹은 종교가 있으나 열렬한 신앙심이 없는 사람들도 매우 많다. 자 그럼 이제, 산티아고 순례길을 직접 걸어본 사람 입장에서 산티아고 순례길이 갖는 장단점이 무엇인지 소개해보겠다. (지극히 주관적인, 허니피셜 분석임을 미리 밝혀둔다)
여행은 언제나 그렇듯 현실적인 문제를 극복해야 한다. 사람들이 선뜻 여행을 결심하지 못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비용 때문이다. 해외로 떠나는 여행 중에서도 특히 유럽으로의 여행은 비용이 가장 많이 든다. 하지만, 산티아고 순례길은 그 무대가 서유럽 국가인 스페인임을 고려했을 때 가성비가 상당히 괜찮은 편이다. 그 이유는 알베르게(Albergue)라는 다소 특별한 개념의 숙박시설에 있다. 알베르게는 쉽게 말하면 순례자들을 위한 숙소인데, 크레덴시알(Credential)이라 불리는 순례자 여권을 가진 순례객들이 투숙할 수 있는 곳이다. 많은 수의 알베르게가 기부금 형식으로 운영되고 있으며, 고정된 액수의 숙박비를 받는 곳들도 대체로 10유로 안팎의 저렴한 숙박료로 운영되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스페인은 마트에서 파는 식자재 물가가 꽤 싼 편이다. 식당에서 식사하는 경우에는 당연히 어느 정도 지출을 감수해야겠지만, 여행경비를 아끼고 싶다면 마트에서 직접 식자재들을 사다가 알베르게에서 샌드위치나 파스타 같은 간단한 음식들을 만들어 끼니를 해결하면 된다. 매일의 지출을 꼼꼼하게 기록해놓았다면, 이 글을 읽고 있는 미래의 순례객들이 여행경비를 추산해보는 데 큰 도움이 되었겠지만, 안타깝게도 여행을 하면서 가계부를 기록하지 않았다. (이를 전문용어로 'Guichanism' 이라 한다)
산티아고 대성당의 순례객 사무소에 따르면 2017년 한 해 동안 30만 명 이상의 순례객이 순례길을 걸었다. 이처럼 산티아고 순례길은 세계 각지에서 수많은 순례객이 몰리는 인기 있는 여행코스라서 시스템이 잘 갖추어져 있는 편이다. 실제로 순례객들이 창출하는 경제적인 이익이 상당하기 때문에 스페인 정부는 물론이고 지자체 별로도 순례객들을 유치하기 위한 인프라와 시스템을 구축하고 개선하는데 상당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재미있는 일화가 하나 있다. (그다지 재미없을 수도 있다) 'A Fonsagrada'라는 작은 시골 마을에 도착했을 때, 사진을 찍으려고 무릎 높이 정도 되는 돌담에 올라갔다가 발을 헛디뎌 돌담 아래로 굴러떨어졌다. 낮은 담장이었으나 하필 떨어지면서 오른쪽 옆구리를 돌 모서리에 세게 박았다. 갖고 있던 타이레놀을 먹으면서 통증을 참고 걸어보려 했으나, 자고 일어나자 숨을 쉬기도 힘들 정도로 아파서 갈비뼈에 금이 간 건 아닌가 하는 걱정이 들었다. 주말이어서 동네 의원에는 들러볼 처지가 못 되었기에, 하는 수 없이 버스를 타고 'Lugo'라는 도시로 이동해, 도시 이름이 들어간 병원 응급실로 갔다. 다행히 엑스-레이를 찍어본 결과, 뼈에는 이상이 없다고 하여 계속 걸을 수 있다는 생각에 잠시 안도했으나, 곧바로 진료비가 걱정됐다.
떨리는 마음으로 수납처에 가서 진료비가 얼마나 나왔냐고 물었는데, 수납처에 앉아 있던 직원이 되려 이상하다는 듯이 그건 뭐하러 묻냐는 것이다. 너무 어이가 없어서 돈을 지불해야 하지 않겠냐고 반문하자, 직원은 접수할 때 여행자 보험의 일련번호를 적어줬으니 진료비는 자기들이 알아서 보험사에 청구할 것이라며 넌 그냥 갈 길 가면 된단다. 순례객들에게 진료비를 대폭 할인해주거나 무료로 진료해주는 동네 의원들이 여럿 있다고는 들었는데, 이 정도로 스페인의 공공의료 서비스가 호혜적이고 선진적인 줄은 전혀 몰랐다. 나중에 알고 보니 해당 병원은 갈리시아 지방에서도 생긴 지 얼마 안 된 꽤 큰 편에 속하는 대학병원이었다. (건물 디자인도 기가 막힌다. 궁금하다면, 구글에서 'Hospital Universitario Lucus Augusti' 를 검색해서 감상해보시라)
개인적으로 꼽은 산티아고 순례길의 마지막 장점은 견문을 넓힐 수 있다는 점이다. 이는 어찌 보면 산티아고 순례길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모든 여행이 갖는 장점이자 매력이기에 다소 식상하게 들릴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산티아고 순례길은 분명 차별화된 매력을 갖고 있다. 앞서도 말했듯이 산티아고 순례길에는 세계 각지에서 찾아온 순례객들이 모여들고 있으며 그 수도 꾸준히 늘어나는 추세다.
순례객 숙소인 알베르게는 순례객들이 숙식을 해결하는 장소를 넘어서 서로가 소통하고 교류하는 친교의 장이다. 고된 순례를 마치고 하루를 마무리하면서 같이 저녁을 먹고 담소를 나누다 보면 순례객들이 가진 동질감 때문인지 국적과 연령을 초월해서 서로 쉽게 친해진다. 마음이 맞는 사람들끼리 이후의 여정을 함께하기도 한다. 순례 첫날 스페인 바스크 지방의 '이룬(Irun)'이라는 작은 마을의 알베르게에 들어서자 순례를 시작하는 순례객들끼리 서로를 소개하고 각자 계획하고 있는 순례의 일정과 스타일에 대해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자연스럽게 그룹이 만들어졌고, 일주일 정도 함께 순례길을 걸었다. 일주일이 지나고 나서는 직장이나 학교로 돌아가야 해서 순례를 중단한 사람들도 생기고, 남아있는 사람들끼리도 원하는 일정과 코스가 달라 뿔뿔이 흩어졌지만, 아직도 단체 채팅방을 통해 수시로 안부를 주고받고 있다.
산티아고 순례길은 사람 뿐만 아니라 자연환경과 문화적인 면에서도 다양성을 갖고 있다. 스페인은 지역별로 고유의 문화를 간직하고 있다. 스페인은 과거 여러 개의 왕국이 연합해 만든 국가인데, 연방 국가의 전통이 지금까지 이어져오고 있다. 때문에 스페인 사람들은 지방정부를 하나의 국가로 인식해서 스페인에 대한 소속감보다 지방정부에 대한 소속감을 훨씬 강하게 느낀다. 심지어 지방마다 고유의 언어를 갖고 있어서 서로 다른 지방 출신끼리는 공용어가 없으면 (방언만으로는) 기본적인 의사소통도 안 될 정도다. (여담으로 내가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을 때, 유난히 까탈루냐 독립운동 이슈가 격했다)
너무도 당연한 말이겠지만, 제아무리 가성비가 좋다고 해도 해외여행은 해외여행이다. 적잖은 시간과 비용이 지출된다는 말이다. 확실히 항공운임이 과거보다 싸지긴 했다. 국내선의 경우에는 비수기 제주도 왕복 항공권을 10만 원도 채 되지 않는 저렴한 가격에 구매할 수 있는 덕에 많은 사람들이 부담 없이 제주도를 들락날락한다. 하지만 항공운임이 아무리 싸졌다 하더라도 비행기가 가장 비싼 교통편이라는 데에는 반론의 여지가 없다. 특히 국제선의 경우에는 성수기와 비수기의 운임 차이가 꽤 많이 나는 탓에 성수기에는 스페인행 항공권의 편도운임만 해도 100만 원에 육박한다.
그뿐만 아니라 산티아고 순례길의 목적이 '걷는 것'이기 때문에 일정을 단기간으로 계획하기에는 확실히 무리가 있다. 순례길을 걸으며 만난 유럽인들 중에는 긴 코스를 여러 해에 나누어 걷는 사람들이 많았다. 우리보다 접근성이 좋고 휴가 등의 사내복지 제도가 잘 되어 있어 유럽에 사는 사람들은 코스를 나누어 걷는 것이 충분히 가능하다. 반면에 현실적인 한계 때문인지 우리나라 사람들은 대부분 코스 완주에 집착한다. 순례길 도중 다치더라도 아픈 몸을 이끌고 꾸역꾸역 완주에 도전하는 사람들도 여럿 있었다. 내가 걸은 코스의 특성상 한국 사람들을 많이 만나지는 못했으나, 우리나라에서 온 순례객들은 은퇴 후 황혼의 인생을 새롭게 시작하는 노부부들,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자신을 되돌아보려는 사람들, 전역 후 취업전선에 뛰어들기 전 각오를 다지려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세계의 유명 여행지가 공통으로 안고 있는 숙명과도 같은 문제겠지만, 산티아고 순례길 역시 관광객의 수가 늘어남에 따라 본연의 매력을 잃고 있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크다. 2005년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은 순례객은 9만3천여 명 정도였다. 이후 2010년 27만여 명을 기록한 순례객의 수는 2011년 18만여 명까지 대폭 하락했지만, 또다시 꾸준히 늘고 있다. 지난해인 2017년에는 역대 최고치이자 2005년보다 3배 이상 증가한 30여만 명 이상의 순례객이 순례길을 찾았다. 사실 제시한 통계치는 산티아고 대성당의 순례객 사무소에서 '완주증'을 받은 순례객의 숫자이므로, 여러 가지 이유에서 완주증을 받지 않은 나 같은 순례객도 꽤 많다는 점을 고려하면 순례객이 30만을 한참 넘고도 남는다는 뜻이 된다.
주목할만한 점은 한국인의 수가 정말 상상 이상이라는 점이다. 한국인 순례객은 순례자 사무소의 국가별 통계에 '기타 국가'에 포함되어 있어서 정확한 수를 알 수는 없다. 하지만 실제로 순례길 도중 현지인들에게 아시아 국가 특히 한국에서 온 순례객이 유난히 많은 이유가 무엇이냐는 질문을 자주 받았다. 그런데 더 중요한 것은 대부분의 한국인 순례객들이 산티아고 순례길의 여러 코스 중 유독 '프랑스 길'에 몰려있다는 점이다. 추측건대, 이는 하나투어를 비롯한 유명 여행사들이 '인솔자 동행 프로그램'이라 불리는 산티아고 순례길 패키지 상품을 프랑스 길 위주로 판매하고 있는 현상과 무관하지 않다고 본다. 코스에 관한 자세한 내용은 차후 연재를 통해 다시 짚고 넘어가도록 하고, 어찌 됐든 지금도 많은 순례객이 과거보다 순례객 수가 너무 많이 늘어났다고 불평하고 있으며, 추세로 보면 그 수가 앞으로 얼마나 더 늘어날지 모르는 것이 사실이다.
무엇보다 산티아고 순례길의 가장 큰 단점은 불편함을 감수해야 한다는 점이다. 물론 이 부분이 누군가에게는 장점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간혹가다 극한의 상황에 자신을 몰아넣고 스스로 불편함을 극복해나가는 과정에서 나르시시즘을 느끼는 사람이 있으며, 실제로 산티아고 순례길을 찾는 순례객 중에는 그런 부류의(?) 사람들이 꽤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정상적인(?) 사람들은 편하고 품격있는 여행을 좋아한다. 따라서 인류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보통의 존재들에게 산티아고 순례길은 분명 큰 도전이다.
당연하게도 여행용가방(캐리어)을 끌고 다니며 순례길을 걸을 수는 없으며, 짐도 최대한 줄여야 한다. 무슨 일이든 장비빨이 최고의 능력치로 작용하는 법인데, 장비빨을 받을 만한 여지가 극히 제한적이라는 뜻이다. 사실 가장 큰 걸림돌은 알베르게다. 지자체에서 기부제(Donativo)로 운영하는 국・공립 알베르게는 저렴한 숙박비 때문에 편안하고 안락한 숙박은 보장하지 않는다. 편의시설은 커녕 개중에는 학교 체육관에 매트리스만 깔아놓은 알베르게도 있을 정도이니, 어떤 부분이 문제인지 콕 찍어 설명하지 않아도 대충 그림이 그려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알베르게에 대해서는 역시 이후 있을 연재에서 자세히 다뤄보겠다.
장기간 걸어야 하니, 당연히 강한 체력과 정신력도 필수다. 나는 개인적으로 전역 직후 체력이 한창 좋을 때 도전한 것이었음에도 굉장히 힘들었다. 어차피 순례의 스타일은 개인이 알아서 정하는 것이므로 딱히 정해진 규칙 따윈 존재하지 않지만, 대부분의 순례객은 짧게는 10KM에서 길게는 30KM를 매일 걷는다. (나는 39KM를 한 번에 걸은 날도 있었다) 순례길을 떠나기 전 적어도 한 달 이상은 훈련이 필요하다. 체력을 다지기 위해서도 그렇지만, 사전운동이 필요한 이유에는 신발을 길들여야 한다는 중요한 이유도 있다. 나는 아무 생각 없이 출국 직전에 산 등산화가 발에 맞지 않았다. 발바닥 전체에 물집이 잡혀서 한 걸음 한 걸음 발을 떼는 게 고문 같았지만 3일을 꾹 참고 견뎠다. 3일째 되던 날 결국 등산화를 쓰레기통에 처박아 버리고, 샌들을 신고 순례길을 완주했다.
선택은 물론 본인의 몫이겠지만, 나는 개인적으로 산티아고 순례길을 추천한다. 유독 가족들과 여행 다니는 걸 좋아하시는 부모님 덕분에, 나는 어릴 때부터 여행이 인생에서 차지하는 부분이 남들보다 큰 편이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인지 여행 이후 몰려오는 공허함 때문에 여행을 다니는 것에 큰 회의를 느끼고 있었다. 솔직히 말해서, 산티아고 순례길에 대해 꽤 오래전부터 익히 들어 알고는 있었지만 별로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안 들었다. 산티아고 순례길을 다녀온 사람들이 자아 성찰 어쩌고 하며 떠들어대는 소리에는 관심조차 없었다. 오히려 전역 후에 아무 생각 없이 뒹굴뒹굴하고 있던 나에게 유럽여행을 먼저 권유한 건 부모님이셨고, (군 생활을 하면서 모은 돈으로 / 네 돈으로 / 금전적 지원은 꿈도 꾸지 말고 / 네가 알아서 / 네 힘으로) 정말이지 아무 생각도 없던 시기였기에, 부모님이 가라고 하시니까 가야겠다고 마음먹었을 뿐이었다. 그리고는 그놈의 산티아고 순례길이란 놈이 얼마나 대단한 놈인가 싶은 호기심에 순례길에 올랐다. 기대가 크지 않았기 때문이었던 걸까, 직접 걸어보니 확실히 유명 관광지를 돌아다니는 것보다 훨씬 얻은 것이 많았다고 느낀다.
순례길을 시작하기 전에는 파리에 가서 에펠탑을 구경했고, 순례길을 마친 뒤에는 런던에 가서 빅벤을 구경했지만, 무슨 이유에서인지 에펠탑이나 빅벤을 통해서는 새로움을 전혀 느끼지 못했다. 아마도 다양한 형태의 미디어를 통해 이미 숱하게 접해온 모습 그대로였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확실한 건 '이름이 널리 알려져 이미 사람들의 숱한 발자국과 손때를 탄 것들'에는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는 개떡 같은 성격도 큰 이유 중의 하나일 듯싶다. 하지만 산티아고 순례길에서는 담백하면서도 달짝지근한 맛이 났다. 마치 에펠탑 앞에 서는 것을 고급 레스토랑의 스테이크에 비유한다면, 산티아고 순례길은 고소한 참기름과 매콤한 고추장에 비벼 먹는 나물 비빔밥에 비유하고 싶다. (사실은 비빔밥 별로 안 좋아한다)
파울로 코엘류의 명언을 인용하기는 했지만, 사실 파울로 코엘류의 말에 동의하지 않는다. 여행을 결정짓는 가장 중요한 요인은 단언컨대 돈이다. 하지만 현실적인 문제를 이미 극복했거나 충분히 극복할 수 있다면, 그다음은 당연히 마음의 문제다. 철저한 준비는 필수지만, 오히려 지나친 걱정은 여행의 큰 걸림돌이 된다. 이번 기회를 통해 산티아고 순례길을 계획하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을 위해 경험담을 나누어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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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티아고 순례길, 그게 뭔데?
나는 어려서부터 등산을 좋아하시는 아버지를 따라 전국의 여러 명산을 두루두루 정복했다. 당시에는 굳이 왜 이렇게 사서 고생을 하나 싶은 생각에, 산에 가자는 아버지와 매일매일 전쟁을 치른 끝에 마지못해 질질 끌려다녔다. '걷기'의 매력을 조금이나마 알게 된 것은 스물이 되던 해였다. 생애 첫 수능을 치르고 몇 일 뒤,난생처음 제주도로 '나홀로여행'을 떠났고 올레길 7코스를 걸었다. 한라산은 성판악 코스를 올랐다. '나홀로여행'의 매력에 도취해서 또다시 기회를 만들어보고자 수능을 한 번 더 봤다. (사실 대학을 못 가서 다시 본 건데, 속는 셈 치고 넘어가 주길 바란다) 다시 간 제주도에서 올레길 8코스와 9코스를 걸었고, 한라산은 어리목으로 올라 영실로 내려왔다. 대학에 다닐 때는 친구들을 이끌고 무박으로 설악산을 종주했고, 그다음 해 겨울에는 3박 4일 일정으로 지리산을 종주했다. 이처럼 대학생 때의 나는 항상 열정에 넘치고 새로움에 자극받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졸업을 기념하며 떠난 지리산 종주 이후로 점점 열정이 사라져갔고, 국방의 의무를 다하고 다시 부모님 품으로 돌아온 때부터는 마음속에서 아무런 생동감도 느껴지지 않았다. 산티아고 순례길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건 바로 그 무렵이었다.산티아고 순례길은 예수의 열두 제자 중 하나였던 야고보 성인의 무덤이 있는 스페인 북서쪽 도시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Santiago de Compostela)로 향하는 약 800KM에 이르는 길이다. (야곱이라고 부르고 싶은 분들은 그렇게 부르시라, 난 야고보라고 부르겠으니) 싼띠아고(Santiago)는 야고보 성인을 칭하는 스페인식 이름이며, 영어식 표기로는 세인트 제임스(Saint James)가 된다. 1189년 교황 알렉산더 3세가 예루살렘, 로마와 함께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를 성스러운 도시로 선포한 이후로 수많은 순례객이 순례길을 걸었다. 1987년 파울로 코엘료의 책 <순례자>가 출간된 이후 더욱 유명해졌으며, 1993년에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지정되어 유럽은 물론 전 세계에서 순례객들이 몰려들고 있다. 그렇다면, 산티아고 순례길은 기독교를 믿는 사람들에게만 의미가 있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실제로 순례길을 걸어보면 종교가 없는 사람들 혹은 종교가 있으나 열렬한 신앙심이 없는 사람들도 매우 많다. 자 그럼 이제, 산티아고 순례길을 직접 걸어본 사람 입장에서 산티아고 순례길이 갖는 장단점이 무엇인지 소개해보겠다. (지극히 주관적인, 허니피셜 분석임을 미리 밝혀둔다)
산티아고 순례길의 장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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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선문 전망대에서 바라본 파리의 시내. 여행은 언제나 그렇듯 현실적인 문제를 극복해야 한다. |
여행은 언제나 그렇듯 현실적인 문제를 극복해야 한다. 사람들이 선뜻 여행을 결심하지 못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비용 때문이다. 해외로 떠나는 여행 중에서도 특히 유럽으로의 여행은 비용이 가장 많이 든다. 하지만, 산티아고 순례길은 그 무대가 서유럽 국가인 스페인임을 고려했을 때 가성비가 상당히 괜찮은 편이다. 그 이유는 알베르게(Albergue)라는 다소 특별한 개념의 숙박시설에 있다. 알베르게는 쉽게 말하면 순례자들을 위한 숙소인데, 크레덴시알(Credential)이라 불리는 순례자 여권을 가진 순례객들이 투숙할 수 있는 곳이다. 많은 수의 알베르게가 기부금 형식으로 운영되고 있으며, 고정된 액수의 숙박비를 받는 곳들도 대체로 10유로 안팎의 저렴한 숙박료로 운영되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스페인은 마트에서 파는 식자재 물가가 꽤 싼 편이다. 식당에서 식사하는 경우에는 당연히 어느 정도 지출을 감수해야겠지만, 여행경비를 아끼고 싶다면 마트에서 직접 식자재들을 사다가 알베르게에서 샌드위치나 파스타 같은 간단한 음식들을 만들어 끼니를 해결하면 된다. 매일의 지출을 꼼꼼하게 기록해놓았다면, 이 글을 읽고 있는 미래의 순례객들이 여행경비를 추산해보는 데 큰 도움이 되었겠지만, 안타깝게도 여행을 하면서 가계부를 기록하지 않았다. (이를 전문용어로 'Guichanism' 이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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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례길에서 찍은 사진. 조개문양이 그려진 표지판들이 순례객들을 안내한다. |
산티아고 대성당의 순례객 사무소에 따르면 2017년 한 해 동안 30만 명 이상의 순례객이 순례길을 걸었다. 이처럼 산티아고 순례길은 세계 각지에서 수많은 순례객이 몰리는 인기 있는 여행코스라서 시스템이 잘 갖추어져 있는 편이다. 실제로 순례객들이 창출하는 경제적인 이익이 상당하기 때문에 스페인 정부는 물론이고 지자체 별로도 순례객들을 유치하기 위한 인프라와 시스템을 구축하고 개선하는데 상당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재미있는 일화가 하나 있다. (그다지 재미없을 수도 있다) 'A Fonsagrada'라는 작은 시골 마을에 도착했을 때, 사진을 찍으려고 무릎 높이 정도 되는 돌담에 올라갔다가 발을 헛디뎌 돌담 아래로 굴러떨어졌다. 낮은 담장이었으나 하필 떨어지면서 오른쪽 옆구리를 돌 모서리에 세게 박았다. 갖고 있던 타이레놀을 먹으면서 통증을 참고 걸어보려 했으나, 자고 일어나자 숨을 쉬기도 힘들 정도로 아파서 갈비뼈에 금이 간 건 아닌가 하는 걱정이 들었다. 주말이어서 동네 의원에는 들러볼 처지가 못 되었기에, 하는 수 없이 버스를 타고 'Lugo'라는 도시로 이동해, 도시 이름이 들어간 병원 응급실로 갔다. 다행히 엑스-레이를 찍어본 결과, 뼈에는 이상이 없다고 하여 계속 걸을 수 있다는 생각에 잠시 안도했으나, 곧바로 진료비가 걱정됐다.
떨리는 마음으로 수납처에 가서 진료비가 얼마나 나왔냐고 물었는데, 수납처에 앉아 있던 직원이 되려 이상하다는 듯이 그건 뭐하러 묻냐는 것이다. 너무 어이가 없어서 돈을 지불해야 하지 않겠냐고 반문하자, 직원은 접수할 때 여행자 보험의 일련번호를 적어줬으니 진료비는 자기들이 알아서 보험사에 청구할 것이라며 넌 그냥 갈 길 가면 된단다. 순례객들에게 진료비를 대폭 할인해주거나 무료로 진료해주는 동네 의원들이 여럿 있다고는 들었는데, 이 정도로 스페인의 공공의료 서비스가 호혜적이고 선진적인 줄은 전혀 몰랐다. 나중에 알고 보니 해당 병원은 갈리시아 지방에서도 생긴 지 얼마 안 된 꽤 큰 편에 속하는 대학병원이었다. (건물 디자인도 기가 막힌다. 궁금하다면, 구글에서 'Hospital Universitario Lucus Augusti' 를 검색해서 감상해보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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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례길 첫날 알베르게에서 만난 친구들과 일주일 정도 같이 걸었다. 연령대는 물론이고, 스페인・이태리・미국・영국・프랑스・독일・네덜란드 등 국적도 다양했다. |
개인적으로 꼽은 산티아고 순례길의 마지막 장점은 견문을 넓힐 수 있다는 점이다. 이는 어찌 보면 산티아고 순례길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모든 여행이 갖는 장점이자 매력이기에 다소 식상하게 들릴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산티아고 순례길은 분명 차별화된 매력을 갖고 있다. 앞서도 말했듯이 산티아고 순례길에는 세계 각지에서 찾아온 순례객들이 모여들고 있으며 그 수도 꾸준히 늘어나는 추세다.
순례객 숙소인 알베르게는 순례객들이 숙식을 해결하는 장소를 넘어서 서로가 소통하고 교류하는 친교의 장이다. 고된 순례를 마치고 하루를 마무리하면서 같이 저녁을 먹고 담소를 나누다 보면 순례객들이 가진 동질감 때문인지 국적과 연령을 초월해서 서로 쉽게 친해진다. 마음이 맞는 사람들끼리 이후의 여정을 함께하기도 한다. 순례 첫날 스페인 바스크 지방의 '이룬(Irun)'이라는 작은 마을의 알베르게에 들어서자 순례를 시작하는 순례객들끼리 서로를 소개하고 각자 계획하고 있는 순례의 일정과 스타일에 대해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자연스럽게 그룹이 만들어졌고, 일주일 정도 함께 순례길을 걸었다. 일주일이 지나고 나서는 직장이나 학교로 돌아가야 해서 순례를 중단한 사람들도 생기고, 남아있는 사람들끼리도 원하는 일정과 코스가 달라 뿔뿔이 흩어졌지만, 아직도 단체 채팅방을 통해 수시로 안부를 주고받고 있다.
산티아고 순례길은 사람 뿐만 아니라 자연환경과 문화적인 면에서도 다양성을 갖고 있다. 스페인은 지역별로 고유의 문화를 간직하고 있다. 스페인은 과거 여러 개의 왕국이 연합해 만든 국가인데, 연방 국가의 전통이 지금까지 이어져오고 있다. 때문에 스페인 사람들은 지방정부를 하나의 국가로 인식해서 스페인에 대한 소속감보다 지방정부에 대한 소속감을 훨씬 강하게 느낀다. 심지어 지방마다 고유의 언어를 갖고 있어서 서로 다른 지방 출신끼리는 공용어가 없으면 (방언만으로는) 기본적인 의사소통도 안 될 정도다. (여담으로 내가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을 때, 유난히 까탈루냐 독립운동 이슈가 격했다)
산티아고 순례길의 단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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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히드로 공항에서 찍은 사진. 해외여행에는 당연하게도 적잖은 시간과 비용이 필요하다. |
너무도 당연한 말이겠지만, 제아무리 가성비가 좋다고 해도 해외여행은 해외여행이다. 적잖은 시간과 비용이 지출된다는 말이다. 확실히 항공운임이 과거보다 싸지긴 했다. 국내선의 경우에는 비수기 제주도 왕복 항공권을 10만 원도 채 되지 않는 저렴한 가격에 구매할 수 있는 덕에 많은 사람들이 부담 없이 제주도를 들락날락한다. 하지만 항공운임이 아무리 싸졌다 하더라도 비행기가 가장 비싼 교통편이라는 데에는 반론의 여지가 없다. 특히 국제선의 경우에는 성수기와 비수기의 운임 차이가 꽤 많이 나는 탓에 성수기에는 스페인행 항공권의 편도운임만 해도 100만 원에 육박한다.
그뿐만 아니라 산티아고 순례길의 목적이 '걷는 것'이기 때문에 일정을 단기간으로 계획하기에는 확실히 무리가 있다. 순례길을 걸으며 만난 유럽인들 중에는 긴 코스를 여러 해에 나누어 걷는 사람들이 많았다. 우리보다 접근성이 좋고 휴가 등의 사내복지 제도가 잘 되어 있어 유럽에 사는 사람들은 코스를 나누어 걷는 것이 충분히 가능하다. 반면에 현실적인 한계 때문인지 우리나라 사람들은 대부분 코스 완주에 집착한다. 순례길 도중 다치더라도 아픈 몸을 이끌고 꾸역꾸역 완주에 도전하는 사람들도 여럿 있었다. 내가 걸은 코스의 특성상 한국 사람들을 많이 만나지는 못했으나, 우리나라에서 온 순례객들은 은퇴 후 황혼의 인생을 새롭게 시작하는 노부부들,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자신을 되돌아보려는 사람들, 전역 후 취업전선에 뛰어들기 전 각오를 다지려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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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티아고 순례길 순례객 현황 (06-16) 산티아고 순례길을 찾는 순례객의 수가 꾸준히 늘고 있다. |
세계의 유명 여행지가 공통으로 안고 있는 숙명과도 같은 문제겠지만, 산티아고 순례길 역시 관광객의 수가 늘어남에 따라 본연의 매력을 잃고 있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크다. 2005년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은 순례객은 9만3천여 명 정도였다. 이후 2010년 27만여 명을 기록한 순례객의 수는 2011년 18만여 명까지 대폭 하락했지만, 또다시 꾸준히 늘고 있다. 지난해인 2017년에는 역대 최고치이자 2005년보다 3배 이상 증가한 30여만 명 이상의 순례객이 순례길을 찾았다. 사실 제시한 통계치는 산티아고 대성당의 순례객 사무소에서 '완주증'을 받은 순례객의 숫자이므로, 여러 가지 이유에서 완주증을 받지 않은 나 같은 순례객도 꽤 많다는 점을 고려하면 순례객이 30만을 한참 넘고도 남는다는 뜻이 된다.
주목할만한 점은 한국인의 수가 정말 상상 이상이라는 점이다. 한국인 순례객은 순례자 사무소의 국가별 통계에 '기타 국가'에 포함되어 있어서 정확한 수를 알 수는 없다. 하지만 실제로 순례길 도중 현지인들에게 아시아 국가 특히 한국에서 온 순례객이 유난히 많은 이유가 무엇이냐는 질문을 자주 받았다. 그런데 더 중요한 것은 대부분의 한국인 순례객들이 산티아고 순례길의 여러 코스 중 유독 '프랑스 길'에 몰려있다는 점이다. 추측건대, 이는 하나투어를 비롯한 유명 여행사들이 '인솔자 동행 프로그램'이라 불리는 산티아고 순례길 패키지 상품을 프랑스 길 위주로 판매하고 있는 현상과 무관하지 않다고 본다. 코스에 관한 자세한 내용은 차후 연재를 통해 다시 짚고 넘어가도록 하고, 어찌 됐든 지금도 많은 순례객이 과거보다 순례객 수가 너무 많이 늘어났다고 불평하고 있으며, 추세로 보면 그 수가 앞으로 얼마나 더 늘어날지 모르는 것이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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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례길 중에서도 가장 난이도가 높은 Hospitales 구간을 걸을 때 만난 쌍무지개. 개인적으로 불편함을 감수하는 이유를 이 한 장의 사진으로 설명하고 싶다. |
무엇보다 산티아고 순례길의 가장 큰 단점은 불편함을 감수해야 한다는 점이다. 물론 이 부분이 누군가에게는 장점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간혹가다 극한의 상황에 자신을 몰아넣고 스스로 불편함을 극복해나가는 과정에서 나르시시즘을 느끼는 사람이 있으며, 실제로 산티아고 순례길을 찾는 순례객 중에는 그런 부류의(?) 사람들이 꽤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정상적인(?) 사람들은 편하고 품격있는 여행을 좋아한다. 따라서 인류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보통의 존재들에게 산티아고 순례길은 분명 큰 도전이다.
당연하게도 여행용가방(캐리어)을 끌고 다니며 순례길을 걸을 수는 없으며, 짐도 최대한 줄여야 한다. 무슨 일이든 장비빨이 최고의 능력치로 작용하는 법인데, 장비빨을 받을 만한 여지가 극히 제한적이라는 뜻이다. 사실 가장 큰 걸림돌은 알베르게다. 지자체에서 기부제(Donativo)로 운영하는 국・공립 알베르게는 저렴한 숙박비 때문에 편안하고 안락한 숙박은 보장하지 않는다. 편의시설은 커녕 개중에는 학교 체육관에 매트리스만 깔아놓은 알베르게도 있을 정도이니, 어떤 부분이 문제인지 콕 찍어 설명하지 않아도 대충 그림이 그려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알베르게에 대해서는 역시 이후 있을 연재에서 자세히 다뤄보겠다.
장기간 걸어야 하니, 당연히 강한 체력과 정신력도 필수다. 나는 개인적으로 전역 직후 체력이 한창 좋을 때 도전한 것이었음에도 굉장히 힘들었다. 어차피 순례의 스타일은 개인이 알아서 정하는 것이므로 딱히 정해진 규칙 따윈 존재하지 않지만, 대부분의 순례객은 짧게는 10KM에서 길게는 30KM를 매일 걷는다. (나는 39KM를 한 번에 걸은 날도 있었다) 순례길을 떠나기 전 적어도 한 달 이상은 훈련이 필요하다. 체력을 다지기 위해서도 그렇지만, 사전운동이 필요한 이유에는 신발을 길들여야 한다는 중요한 이유도 있다. 나는 아무 생각 없이 출국 직전에 산 등산화가 발에 맞지 않았다. 발바닥 전체에 물집이 잡혀서 한 걸음 한 걸음 발을 떼는 게 고문 같았지만 3일을 꾹 참고 견뎠다. 3일째 되던 날 결국 등산화를 쓰레기통에 처박아 버리고, 샌들을 신고 순례길을 완주했다.
여행은 언제나 돈의 문제가 아니라 용기의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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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은 언제나 돈의 문제가 아니라 용기의 문제다 - 파울로 코엘류 [이미지출처] |
선택은 물론 본인의 몫이겠지만, 나는 개인적으로 산티아고 순례길을 추천한다. 유독 가족들과 여행 다니는 걸 좋아하시는 부모님 덕분에, 나는 어릴 때부터 여행이 인생에서 차지하는 부분이 남들보다 큰 편이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인지 여행 이후 몰려오는 공허함 때문에 여행을 다니는 것에 큰 회의를 느끼고 있었다. 솔직히 말해서, 산티아고 순례길에 대해 꽤 오래전부터 익히 들어 알고는 있었지만 별로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안 들었다. 산티아고 순례길을 다녀온 사람들이 자아 성찰 어쩌고 하며 떠들어대는 소리에는 관심조차 없었다. 오히려 전역 후에 아무 생각 없이 뒹굴뒹굴하고 있던 나에게 유럽여행을 먼저 권유한 건 부모님이셨고, (군 생활을 하면서 모은 돈으로 / 네 돈으로 / 금전적 지원은 꿈도 꾸지 말고 / 네가 알아서 / 네 힘으로) 정말이지 아무 생각도 없던 시기였기에, 부모님이 가라고 하시니까 가야겠다고 마음먹었을 뿐이었다. 그리고는 그놈의 산티아고 순례길이란 놈이 얼마나 대단한 놈인가 싶은 호기심에 순례길에 올랐다. 기대가 크지 않았기 때문이었던 걸까, 직접 걸어보니 확실히 유명 관광지를 돌아다니는 것보다 훨씬 얻은 것이 많았다고 느낀다.
순례길을 시작하기 전에는 파리에 가서 에펠탑을 구경했고, 순례길을 마친 뒤에는 런던에 가서 빅벤을 구경했지만, 무슨 이유에서인지 에펠탑이나 빅벤을 통해서는 새로움을 전혀 느끼지 못했다. 아마도 다양한 형태의 미디어를 통해 이미 숱하게 접해온 모습 그대로였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확실한 건 '이름이 널리 알려져 이미 사람들의 숱한 발자국과 손때를 탄 것들'에는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는 개떡 같은 성격도 큰 이유 중의 하나일 듯싶다. 하지만 산티아고 순례길에서는 담백하면서도 달짝지근한 맛이 났다. 마치 에펠탑 앞에 서는 것을 고급 레스토랑의 스테이크에 비유한다면, 산티아고 순례길은 고소한 참기름과 매콤한 고추장에 비벼 먹는 나물 비빔밥에 비유하고 싶다. (사실은 비빔밥 별로 안 좋아한다)
파울로 코엘류의 명언을 인용하기는 했지만, 사실 파울로 코엘류의 말에 동의하지 않는다. 여행을 결정짓는 가장 중요한 요인은 단언컨대 돈이다. 하지만 현실적인 문제를 이미 극복했거나 충분히 극복할 수 있다면, 그다음은 당연히 마음의 문제다. 철저한 준비는 필수지만, 오히려 지나친 걱정은 여행의 큰 걸림돌이 된다. 이번 기회를 통해 산티아고 순례길을 계획하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을 위해 경험담을 나누어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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